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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스트릭트9 - 인간이 아닌 그들
저 이런 거 아주 좋아합니다. 그냥 다큐멘터리는 좋아하고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린 영화는 아주 좋아합니다.
이 말은 다큐멘터리 + 영화라서 다큐멘터리 형식인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는 건 무언가를 알아간다는 것을 좋아하고 혹은 사상이념의도관점 등이 되도록 덜 보태어진 것을 보는 게 좋다는 것이지만,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잖아요? 그 별개의 재미는, 현실을 침범한 가상에 기인합니다. 인터뷰하는 사람들, 방송국카메라에 남겨진 기록와 CCTV들에 남은 기록들까지 뒤져가면서 만든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 속 다큐멘터리는 그 어떤 주장보다도 크고 강하게, 이것이 있을 법한 일이라고 외치죠.

※ 미리니름=내용누설=스포일러=네타바레 약간 있습니다.

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정지해있는 우주선, “참다 못해” 우주선 안으로 진입하는 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뉴스, 그리고 손을 잡고 있는 두 종족의 동상을 보여주면서도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그들.
만약 실제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격리정책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영화 속 요하네스버그 위의 우주선, 그리고 실제 남아공의 인종격리정책은 섬뜩하게 맞아떨어지지만……. 실제사건과 일부러 맞아떨어지게 해놓은 영화적 장치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런 죄악들에 눈 돌리고 영화 속 일은 우리와는 상관없어, 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자는 없어요.



비커스는 그를 아는 사람들의 인터뷰에서 표현되기로,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보통의 사람입니다.
그만큼 평범할 데가 없어요. 아내와 서로 사랑하고, 일에 충직하려고 하고 -정확히는, 그러한 모습을 보려주려고 하고?-, 축하해주는 사람도 있고, 친구도 있고, 약간 덤벙대고, 결정적으로 자신의 이익에 충실하고.
해맑게 웃으며 알들을 불태우는 모습도, “얘는 조금 머리가 좋은데? 그럼 네 아이를 인권보호차원에서 데려가는 건 어떤가 음하하하” 라는 수준높은(?) 협박을 하는 모습까지도 아주 보통스럽군요.



영화 속에서 그의 모습은 잘 맞아떨어지는 톱니바퀴처럼 철커덕 철커덕 굴러갑니다. 비정상을 핍박하던 정상이 비정상이 되었을 때의 섬뜩한 굴욕. 그 섬뜩함은 정상에 이입되었을 때 제대로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비정상에도 이입되었다면? 직전까지 외계인을 다그치던 모습에서 거꾸로 된 그는 불쌍하면서도 응보를 받는 듯하기도 하고, 비록 사고로 인해 반전된 인생이지만 중간자/혹은 양비론적인 존재로써 의미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하기도 하는데, 아 맙소사. 이 남자 정신을 못 차렸어요!
어쩌면 그건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어요. 감청 내지는 도청 심지어는 계략일 수도 있는데도 전화기를 붙들고 엉엉대는 모습은 딱하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지만, 정상을 향한 집착과 희망은 버리라고 하기엔 가혹한 일이었을테죠. 더불어 그가 혐오하던 비정상으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게 더 허무맹랑하긴 합니다.
그래서 몽둥이로 크리스토퍼를 후려치는 비커스의 모습은 짜증이 나기는 해도 그의 관점에서는 당연한 일이겠죠. 그의 눈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보였을테고 오직 정상을 향한 선망이 그를 움직였을테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바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프런”들을 같은 인간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죠. (비록 그것이 우리가 작품 외부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해도)
결국 비커스는 정상/비정상의 구분법을 버리고 크리스토퍼의 귀향을 위해 싸우게 되는데, 사실 강제와 다름없는 변화입니다. 그리고 사실 구분법을 버린 게 아니라 그저 입장만 조금 달라진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인간이어서 프런을 내쫓는다” 에서 “날 죽이려하는 짜증나는 인간들!” 이 끼어든 것으로.
그러나 아무튼, 자신을 내버려두라며 등을 보이고 달아나던 비커스는 괴로워하며 천천히 걸음을 멈춥니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외계인을 구합니다! 이건 해묵은 이야기죠. 비로소 용기를 일으켜 적과 싸운다. 겉으로 보기엔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렇기에 조잡하게 의도된 권선징악 마무리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달아나는 비커스의 귀로 계속해서 재생되는 목소리와 그 이전의 그들의 행적을 보면 이야기는 다르죠. 연구실로 침입해들어갔을 때, 참혹한 모습을 하고 있는 동족의 시신을 보며 무기를 떨어뜨리고 망연자실해하는 [인간적인] 크리스토퍼. 그리고 “이 녀석은 어떻게 할까요?” / “쓸모 없으니 죽여버려.” 라는 대화가 반복해서 비커스에게 들려올 때, 그는 비정상의 벽을 허물고 공감과 이입을 겪게 됩니다.
크리스토퍼가 느끼는, 혹은 앞으로 느낄 고통을 자신이 느끼는 것과 같은 종류의 고통으로 인지했으니 남은 것은 그를 돕는 것뿐이죠. 고통을 공감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때가 되서야 비로소 비커스는 ‘인간적’이 됩니다.

만약 비커스가 좀 더 침착하고 교활했더라면, 크리스토퍼를 우주선까지 무사히 인도한 다음 그곳에서 비로소 검은 속내를 발휘해서 우주선을 점령한 뒤 우주선을 송두리째 MNU에 넘겼을지도 모르고- 차라리 지구를 정복하려고 했다면 모르되, 그랬더라면 아마도 비커스는 바라던 보답이나 정상적인 처우대신 똑같은 가혹한 처사를 당했을테고.
이쪽이 음울하고 절망적이며 인간혐오적인 맛이 한껏 풍겨졌겠지만, 전 원래 엔딩이 좋네요.
같은 ‘인간’인 크리스토퍼를 받아들이고 그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모습도 보여주는 비커스의 변화가 마음에 듭니다.

‘그들’의 시점에서 비정상이 되어버렸기에, 돌아갈 수 없는 슬픔을 안고 강철의 꽃을 만들고 있는 손길은 아직도 공감의 능력이 인간에게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네요. 그래서, 그들은 아직 인간이 아닙니다.



 ◎ 뱀발.

몇 가지 이상한 격언이 생각나네요.

이런 거 있잖습니까, 만화 속 과학.
우주 공간에서는 지구에서보다 더 크고 더 빠르게 소리가 퍼져나간다. 소리의 진행을 방해할 공기따위가 없으므로. 뭐 이런 거요.
그 중에 "불의를 못 참는 남자가 한명은 있고, 무식하지만 힘 센 남자가 한명은 있고, 똑똑하고 재수없는 애가 하나는 있다." 라거나 "애들에게 일을 시키면 두배 벌벌 떨면서 열배는 빨리 일을 처리할 것이다." ……뭐 이런, 어린아이에 대한 언급이 꽤 많이 있던 것 같은데.
노골적이지는 않고 은근하게 나오는데, 그래서 오히려 더 노골적으로 다가오네요. 이건 만화에 바치는 닐 블룸캠프의 헌사인가?! ㅜㅜ;



(히밤 쓸데없이 길어……;)
 
by 역설 | 2009/11/07 10:05 | 트랙백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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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11/07 12:1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오월 at 2009/11/07 13:00
디스트릭트 용산...마지막 장면에서 아마 인간과 외계인(혐오스러운자, 또는 피지배자)은 결국엔 같은 존재 라는점을 보여주는것 같아요
Commented by 역설 at 2009/11/08 00:54
용, 용산?
마지막 장면은 조금 소름끼칩니다. “누가 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은 아닌 게 확실해요.” 여러가지로 해석해봐도 다 조금씩은.
Commented by 아르메리아 at 2009/11/07 15:36
영화는 참 잘 만들었는데 남들에게 추천하기에는 석연치않은 기분이었어요'ㅅ');
Commented by 역설 at 2009/11/08 00:54
전 망설임없이 추천! 사실 이건 징그러운 줄 모르겠는걸요……
Commented by 아르메리아 at 2009/11/08 00:57
징그럽다 안 징그럽다의 문제가 아니라 불편한 진실이라 그닷 내키지 않았어요.
Commented by 역설 at 2009/11/11 16:53
다들 외계인이 징그럽다길래 한 소리인데... 하하.
네 사실 정말 징그러운 건 바로 그 현실이었죠.
Commented by 큰별아씨 at 2009/11/07 16:02
ㅇ응 이거 보고싶었는데ㅠ
Commented by 역설 at 2009/11/08 00:54
아직 하고 있어요. 꼭 보세요!
Commented by 양갱 at 2009/11/07 16:57
한번 더 보고는 싶은데 표값이 너무 비싸서 어쩔까 생각중이예요
개인적으로 트랜스포머2보다 훨씬 재밌었어요
Commented by 역설 at 2009/11/08 00:56
트랜스포머2는 사실 이걸 따라갈 수 없죠. 제가 트포팬이긴 합니다만 어쩔 수 없음.
혹자는 마이클 베이를 끌고 와서 코로 죽 먹이며 디스트릭트9 강제관람을 시켜야한다고 하더군요. (……)
Commented by 루첼 at 2009/11/08 02:13
내가 영화를 볼때 개연성을 많이 따지는 편이라 개연성 엉망이면 가차없이 까대는 편이긴 한데

디스트릭트9의 경우 개연성은 꽤 떨어지는 편이지만 영화의 진행방법이랑 비커스의 변화되는 모습이 매우 표현이 잘되었고, 참 사실적으로 묘사된게 맘에들어서 맘에든영화지!
Commented by 역설 at 2009/11/11 16:54
개연성이 떨어졌던가...? 난 죄다 만족했는데.
Commented by 밑동구름 at 2009/11/16 00:28
남동생도 아버지도 재밌다고 하셨는데 저만 못 봤다능. ㅇㅈㄹ
Commented by 역설 at 2009/11/16 23:58
이건 꼭 봐줘야함 하악하악. 영화복이 요새 좀 있는 듯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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